<멍게 발톱> 전시 서문
Ridiculous Thoughts
(부분 발췌)
‘여운’, 한숨‘, 토사물’로 키워드를 제시한 정다원 작가는 자신의 감정들이 오는 원인은 대체로 허무주의이며, 삶은 근본적으로는 무의미하다는 전제를 하고 살아가는 이다. 그래서 긴 호흡으로 허탈함과 허무함을 구분하며 감정에서 오는 잔재들을 담아내는 작업을 한다. 가령 ‘생존 문제로서의 작업’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해보았을 때, 그것은 경제적 차원을 뛰어 넘는 그야말로 실존적 가치의 우선함을 이야기하며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고,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싶기도 하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태도에서는 분명 그의 키워드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다만 그것이 의식적인 저항이나 극복이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만족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강덕현 작가와는 결이 다르다. 강덕현 작가가 정반합적인 단계를 밟아왔다면, 정다원 작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을 무심한 듯 수수께끼 같이 보여주는 작업 스타일이 종종 발견된다.
정다원 작가의 <눈을 파먹고 들어온 찬란한 소음은 나를 무력하게>라든지 <그 편지는 전단지 사이에 가지런한 이처럼 놓여있었다>를 보면, 울렁이는 그로테스크함을 툭 던져놓는 시크함이 있고, <그것 땜에 힘든 건데>나 <의미는 모를 케이크>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헛헛함이 있는데, 이는 작가가 감상자들에게 공감을 강요하기보다는 그것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받아들임’을 본인도 수행하면서 어딘가에 놓아 둔 느낌이다. 그것이 이런 기회에 전시장이 될 뿐, 우리는 어디에선가 그런 감정을 만났을 때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출품한 작품 중 <게 발톱>이 가장 모호한데, 작가는 이런 모호함 속에서 감상자들과 얇고 예민한 감정들로 만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둔탁하게 정답을 갈구하는 모범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작가 역시 작업을 하다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어떤 하나를 고쳤을 때가 ‘완성’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라고 한다. 이처럼 작가는 기본적인 성향이 마치 사춘기 시절의 자아 찾기처럼 타인과의 관계, 호흡, 인지와 독립적으로 자신의 하루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만족감이 중요한 사람 같다. “당장 전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작업을 하고 났을 때 ‘다 게워냈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주체의 고백은 여기서 나오는 듯하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토사물은 잉여라기보다는 여운이다. 허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코 딱딱한 태도가 아니며 모든 작업 하나하나에 자연스러운 존중과 평온이 동시에 느껴진다. 처음에는 고전적 의미의 ‘Sympathy(다른 사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가 가만 보면 그 어떤 상호 강요가 없기에, 그 이상의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되면서, 작가의 진솔한 하루하루가 모여 이 존재가 되었구나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대해 “생존을 위한 발악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독기, 그런 독한 것들로 가득한 작업”이라고 자평하는 정다원 작가 역시 뭔가 ‘이상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람임은 분명한데, 강덕현 작가와 함께 초대를 해서 보니 이들이 삶을 대하는 개념 자체가 내적 갈등이면서 동시에 격렬한 대화라는 인상이 만들어져 흥미롭다.
궁극적으로는 이번 2인전의 세 번째 주체인 관객은 이들의 조합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하다. 내 생각엔 요즘 ‘이상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탄도, 비판도, 그렇다고 입에 발린 소리도 아니다. 그저 예술이라는 영역에 발 걸치고 있는 사람의 일기 한 줄 정도라고 해두고 싶다. 우리 사이엔 늘 간극과 긴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 배민영(예술평론가)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