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존, 짓씹은 여운
누구나 삶의 안에서 수많은 감정을 마주한다. 삶 안에 자리하는 감정의 빛은 밝고 힘차다가도 언젠가는 속 깊이 절망적이기도 하며 지극히 찬란하기도, 끔찍하게 무채색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감정들이 모여 혼탁하게 뭉쳐진 덩어리가 한 개인의 인생이다. 그 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빛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생명 그 자체이다.
나의 작업은 일상적 환경과 감정들을 비교적 큰 굴곡 없이 수용하며 기본적으로 건조하고 또 무기력하게 반응하는 삶의 태도에서부터 출발하며, 이러한 무기력함이 불러오는 우울감까지 나아간다. 이와 같이 채도 낮은 감성을 내포한 형상들은 그와 대비적으로 화려하고도 압도적으로 들어찬 풍경 속에 동화되거나 혹은 짓눌린, 유치하면서도 소소한 형상들로 드러난다. 이는 나약하지만 그 속에 알 수 없는 생명의 강함 역시 지니고 있는 한 인간의 소소한 생존에 관련한 문제이다.
삶이, 그리고 삶을 이루는 모든 시간이 근본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는 허무적인 사고를 전제한다. 이는 그 자체로는 비어있음으로써 새로운 가능성 또한 내재하고 있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처음, 나에게 허무함이란 부정의 의미로 시작되었다. 그 안에서 아무런 뜻을 찾지 못한 삶의 시간들, 모든 경험의 순간들은 한숨과도 같은 우울감을 내포하며 무겁게 가라앉아 평생을 마음 한켠에 자리했다. 거창하지 않게, 고작 하루의 시간이라도 살아가기 위한 ‘의미 찾기’라는 생존의 문제로부터 시작한 나의 작업은 허무함 속에 내재해 있는 어떤 예민하고 얇은 감정이나 우울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나의 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행위, 즉 예술로 이어가는 순환적인 구조를 지닌다. 육체의 생존을 위해 밥을 먹고 몸을 뉘어 수면을 취하는 것과 같이, 나에게 있어 예술적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실존적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생존하며 내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작고 사소한 흔적을 남기는 일이며, 즉 이것은 그저 살고자 하는 마음의 흔적이다. 삶의 이유를 만들어가는 행위이다. 넓은 세계, 많은 사람들 중 고작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소한 여운이다. 한 숨의 공기와 같은 여운을 사랑하는 작업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살아감과 그를 위한 사랑을 노력하고자 하는 실천이다. 바로 이 실천, 사랑하기 위한 노력에는 우울하고 공허한 감정의 찌꺼기를 배제하거나 그에 저항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폐가 터질듯 가득 들어차버린 공허를 전부 게워내 버리고 가벼워지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통해 새롭게 드러난 형상들, 이러한 모순덩어리들에 ‘여운’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여운은 한 숨의 공기와도 같이 사랑스럽다. 그러나 여운은 또한 끔찍한 토사물이다. 침체된 먼지들이 뒤섞인 덩어리이며 흐물흐물하게, 어딘가 기이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역시 이것들은 삶의 투쟁에 작동하는 힘이 되어줌으로써 사랑스러운 존재의 위치를 차지하기에 그저 끔찍하지 않고, 단순하고 해학적이며 유치하고 어색한, 때로는 결핍되고 때로는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나타난다.
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이런 모든 형상들은 결국 자아의 투영이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융합되지 못하고 분리된 이질적 자아이며 유령과도 같은 자아이다. 이 형상들은 이성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여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도 않다. 오히려 잔혹하고 의지적인,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며 토사물 같은 감정덩어리들의 사랑스러운 승화이다.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힘이며, 하루를 살아내기 힘겹게 만드는 스트레스 덩어리이다. 또한 이들은 삶의 압도감을 마주하는 인물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화면의 중앙에 자리하면서도 ‘주제’와 ‘배경’으로 존재하지는 못한다. 인물은 풍경에 파묻혀 그것과 동화되거나 오히려 짓눌린 듯 보인다. 압도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짓눌림 속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살아가며, 존재한다. 하찮거나 힘없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살아있음을, 자신이 가능한 한도 내에서 ‘강하게’ 뿜어내고 있다. 이빨을 드러내거나, 위협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고,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화면 밖으로 눈빛을 던진다. 그런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몸짓들이 이들이 삶에 내던지는 힘이며 호소이고 발악이다. 이는 우리가 이미 삶의 안에서, 하루의 안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소한 힘들이다. 이처럼 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생명체가 배경을 뒤로 밀어버릴 만큼 그리 강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위치에 서 있는 것에는 이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장면들과 상징들, 그리고 제목과 연관되어 마치 각각의 ‘주인공’들이 하나의 인생,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연출하며 이들이 그 생의 안에서 약하더라도 강하게 발악하며 독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나는 이렇게 쓸모없는 몽상의 결과, 기이함과 안정감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살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사랑하고자 애쓰는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