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을 스산하게 식히는 파란 하늘과 시리도록 뜨거운 태양이 있는 계절이었다.
모든 것이 마술 같았다. 그런 계절이었다.
눅진하게 달라붙는 공기는 눈물과도 같고 손에 든 얼음은 구름의 조각이다.
이 계절이 돌아오면, 언제 돌아오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돌아오면, 그는 구름 조각을 머리에 얹고 수경을 쓴 채
창으로 들어오는 새파란 빛을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호흡.
한 숨의 호흡.
하나의 조각.
한 숨의 호흡.
하나... 둘... 하나... 둘...
따라서 읊조린다.
“하나... 둘... 하나... 둘...”
녹아내린 구름 조각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와 목구멍을 따라 소름을 일으킨다.
생생한 감각에 그는 몸을 떨며 하얀 이불 속으로 가라앉는다.
파란 물이 가득한 어항.
그 속의 하얀 물고기.
어푸어푸
호흡.
물고기가 죽었다.
미약한 소리로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작은 물고기가 돌바닥에 미동 없이 가라앉아 있던 그 날을 기억한다.
손끝으로 꾸욱 뱃살을 눌러보아도 하얀 물고기는 여전히 하얬다.
그는 몸을 일으켜 물고기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그래야만 숨을 쉴 수 있었다.
‘마법은 존재하나.’
‘마법이 안 된다면 마술은 안 될까.’
물고기를 끌어안은 채로, 그는 단상 위의 멋들어진 마술사가 되어
하나 둘 셋 호흡을 외치는 것을 상상한다.
우레와 같은 함성. 박수 소리. 하나 둘 셋에 맞추어 마법처럼- 되살아난 물고기.
짜자잔
그는 찬 기운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파란빛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방 안이다.
산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여름은 매우 무더운 날씨입니다. 그러나 여름 이불을 딱히 새로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겨울에 사용했던 포근하고 두꺼운 이불을 몸 위로 살포시 덮습니다. 땀이 나지만 몸을 이불 밖으로 살짝 빼낼 뿐,
이불을 걷어버리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발바닥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매년 여름, 얇고 까슬한 이불이 아닌 포근하고 차가운 겨울의 이불을 덮습니다.
숨 막힐 듯 묵직한 무게감이 몸을 누르고 발바닥의 열을 차게 식혀주면 그제서야 세상의 소음을 잊고 스르륵 잠이 듭니다.
그 밤은 만족스러운 밤입니다.
#
목에 이불의 가생이가 닿아있으면 잠들 수 없다. 침을 삼켜 목울대가 일렁일 때마다 가생이의 날카로움에 목이 베인듯
깜짝 놀라며 의식을 심해에서 지상으로 훅, 끌어올린다.
심장이 빠르게 뛰어 잠은 다 달아난다.
잠시 진정하고.
이번에는 가슴께에 가생이가 닿도록 몸을 살짝 위로 틀어본다. 그러나 다시 잠에 빠져들 즈음, 어느새 전과 같이 목울대에
닿아오는 감촉에 심장을 벌렁이며 깨어나고.
이번에는 몸을 아래로 틀어 코까지 그것을 끌어올려 덮지만, 역시나 이내 같은 감촉에 같은 반응을 보이며 깨어난다.
나는 잠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