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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지근한 물에 빠진 살얼음이 빠르게 녹아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후의 이야기다.
상식과 무례와 멍청함을 가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여름을 나기란 다 말라비틀어진 연갈색 뿌리 한 줄기가 새벽녘 탄생한 이슬을 머금고 소생하는 것만큼이나 외계적이고 기적적이며 번쩍이는 태양과도 같은, 그러니까 생명과 습기와 예민함, 그런 것을 닮은,
... 아무튼 힘겨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축축한 흙에 등을 맞대고 땅굴을 파헤치며 기어다녔다.
그들이 파헤친 흙더미에서는 각종 기이한 물품들이 발굴되었다.
누군가 50년 전 잃어버린 늙은 호박, 태양을 막기 위해 얼굴에 바르는 크림, 모든 것을 꿰뚫는 전설의 창과 아무것도 막지 못하는 방패.
그중 내가 몰래 훔치듯 주워 주머니에 욱여넣은 것은 건넛집 사람이 손수 잘라낸 길이 약 12cm의 꼬리였다.
꼬옥 움켜쥔 손안에서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감촉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과일 사세요.”
그러던 중 과일장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신 건 잘 못 먹어요.”
“아주 달고 신 맛은 조금만 나는 과일이에요.”
“신 건 잘 못 먹어요.”
나는 두 번 거절했다. 그도 두 번을 내게 권했다.
두 번의 거절과 두 번의 제안.
우리는 그렇게 공평하게 한 마디씩을 주고받았다는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과일장수가 떠나고, 나는 가던 길을 다시 걸었다.
주머니에서 꿈틀대던 꼬리의 움직임이 멎었다.
한 톨 남김없이 빠져나간 온기는 기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의미 없는 순환을 반복하겠지.
달콤한 과일은 그 비를 품은 대가로 신맛을 뱉어낼 것이며, 이 갈증 속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미지근한 물뿐이겠구나.